나만의 생각으로 『SKY 캐슬』을 진단하면/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

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나만의 생각으로 『SKY 캐슬』을 진단하면

입력시간 : 2019-03-02 18:42:56 , 최종수정 : 2019-05-07 22:52:24, 푸른문학신문 기자


점점 힘이 든다. 사방을 둘러봐도 뭔가 신나는 것은 없고, 나를 괴롭히는 것들만이 점점 나를 옥죄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요즘엔 전 같으면 그냥 넘어갔던 것들도-그 버릇이라는 것에서 하루아침에 벗어나지 못한 채-술 마시고 입을 잘못 놀려 징계를 받거나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며 법까지 가서 싸우다가 몸과 마음 모두 만신창이가 되어 내던져질 수 있다는 것에 겁이 덜컥 난다. 힘들다고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하고 누구와 마음 터놓고 말할 곳도 마땅찮다. 이런 우울한 기분에 분노까지 치밀어 지나가던 사람에게 시비를 걸어 멱살 잡고 바닥을 뒹굴거나, 아무 죄 없는 오래된 유물에 불이라도 지르지 않고 버티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그래 구겨진 자존심이라도 회복하고자 아이들에게 뭔가 교훈 되는 말을 할라치면 또 꼰대 짓한다며 슬슬 피하고, 그건 취업하기 쉽고 경쟁도 치열하지 않은-지금처럼 헬조선도 아닌-팔자 좋은 시절에나 먹히던 말이라며 오히려 대든다. 엄마는 아이에게 강하기만 하면 되나, 딸이나 며느리 대신 집에서 손주를 봐주는 할머니는 강하면서도 부드러워야 하고 인자하기까지 해야 한다는데 그런 할머니의 심정이 너무나 이해가 간다. 그 할머니의 경지는 되어야 요즘 애들이 한번 정도는 관심을 가져준다. 이런 걷어내기 어려운 것들이 밀려드는 중에 크나큰 강적을 또 만났다. 바로 드라마 SKY 캐슬인데, 부모는 낳아주기만 해선 절대 안 되고 그 드라마에서처럼 공부 코디도 섭외해 줘야 하고 궁궐 같은 캐슬을 제공하여 공부에 최적화된 공간도 떡 하니 마련해 줘야 요즘 부모 된 도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만들기 때문이다.

 

SKY 캐슬엔 관심도 없다가 인터넷이나 SNS 등 온갖 매체에서 매일 아우성이라, 안 보면 안 될 것 같고 도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사람들이 저러나 싶어 거의 15회 정도부터 봤는데 중간부터 봐서 그런지 이해가 안 가 언제 날 잡아 몰아서 보았다. 그 내용은 캐슬에 사는 사람들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며-자기들만의 세계에 울타리를 치고-자신의 아이들을 서울의대 가는 것을 목표로, 복잡한 입시 제도를 관리해주는 코디와 심지어 시험지 유출까지도 감행하면서 아이들을 끝간데없이 몰아붙이는 내용이다.


나를 심하게 괴롭히는 드라마를 20회까지19, 20회는 돈까지 내면서-보면서 뭔가 손해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과 동시에 그냥 넘어가면 안 되겠다는 생각과 함께 내 멘탈을 파괴하는 것에서 뽑을 수 있는 것이면 뭐든 다 뽑아내고 싶었다. 그게 복수로 생각했다. 그것에 대한 복수는 나를 겨냥한 나쁜 영향을 무력화시키는 거라 여겼다. SKY 캐슬이 더 이상 나에게 힘쓰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다. 그리하여 내 생각만으로 SKY 캐슬을 해부하고 그 속을 파헤쳐 진단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사람에게 괜한 시비를 걸어 뭔가 분풀이를 할 것 같고, 자기주장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그렇게 했다는 유물 태우기를 나도 할 것 같은 몰지각함을 나름 다스리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그런 결과로서 나는 이 드라마를 보면서 찾아낸 것이 있는데,


그 하나는 부모가 아이들에게 얼마나 중요한가 하는 것이다. 상당히 영향을 줄 거라는 결론이 나왔다. 작가인 이수임의 아들 황우주는 처음에 엄마에게 대들다가 엄마의 진심을 알고 이젠 엄마의 모든 것을 믿기에 이른다. 차민혁의 딸 차세리는 아버지가 몰아붙이니까 가짜 하버드생 흉내까지 낸다. 이렇게 자식에겐 너무나 큰 존재인 부모는 그들에게 선한 영향을 주기도 하고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자식은 부모의 영향 하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또 아버지를 모르고 자랐던-그래서 그 부재에 대한 상처도 대단했을 것인데-김혜나는 그 집에 들어가 복수하는 것이 아니라 속마음은 그동안 받지 못했던 아버지의 존재를 맘껏 느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그동안 눈치만 보며 애어른으로 자란 그 애는 다른 딸들이 그러는 것을 보면서 자기도 아버지에게 어리광도 피우고 응석도 부리며 지내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하여간 이 드라마를 통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지대한 영향을 새삼 알게 되었다. 부모노릇하기 겁난다.


또 하나는 누구나 다 자기만 가진 것이 있는데, 그것을 펴며 사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교훈이었다. 차세리는 사실 아버지가 강요하는 공부는 하기 싫었고 그럴 능력도 못 되었고, 대신 클럽 매니저가 딱 이었던 것이다. 그 앤 미국에서 가짜 하버드대생 행세를 하며 심한 내부 갈등과 정체성 혼란을 겪으며 자기가 가진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고, 자신이 정한 거기로 가기로 마음먹고는-지금까지 피하기만 했던 아버지와 정면 대결하려고-한국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아버지가 강요하는 겉껍데기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 가진 것이 무엇인지 캐서 찾아내 그리로 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스스로 서겠다고 선언하고는 비로소 어른이 된 것이다. 강준상과 그 어머니 윤 여사 역시 사회가 내세우는 겉껍데기만 뒤집어쓰고 살아왔다. 자신을 모르고 남들이 찬양하는 것만 추구하며 살았고 나이가 들어 큰 후회를 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머니의 치맛바람과 강풍과 비바람을 차단한 시원한 그늘에서만 자라온 강준상은 어머니가 제시해 주는 출세의 길만 보고 달리다가 옆에서 자신의 딸이 죽어가는 것도 모른 것이다. 자신이 뭐를 가지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 깨닫지 못해 일어난 일들이다. 사회와 제도들이 그동안 그들의 눈을 가린 것이다. 자신을 눈멀게 한 그것들을 스스로 걷어내고 거기서 걸어 나와 껍데기가 아닌 진짜를 보아야 이런 불행을 막을 수 있다.

 

나는 불만이다. 나도 별 수 없지만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해 비판하길 잘한다(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하는 것이 쉬운 것도 있고 남에게 잘한다고 칭찬을 받아 기분이 좋은 것도 있지만, 자기만은 세상을 똑바로 사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실은 나만 제대로 사는 게 아니라 남도 나름대로 제대로 살고 있다. 굳이 내가 걱정하지 않아도-솔직히 내가 없어도-남들은, 아니 오히려 없으면 더 잘 살지도 모른다. 지적절인 꼰대 짓은 실은 자기만 옳다고 믿는 것이고, 똑바로 사는 내 말을 너희들은 감사하며 들어야 하고 나처럼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 너를 고치겠다는 것이다. 자기 식대로 고치겠다는 것이므로 그것은 곧-말은 너를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남이 아닌 자기만을 위한 것이다. 자기의 신념에 따라 자기의 추종자를 따르지 않는 잘못된 무리들을 전부 고쳐보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대안 없는 지적질(꼰대 짓)을 싫어하고, 그런 사람이 오면 피해버린다. 지적질이 그가 방전된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 내 힘을 빼앗으러 오는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가 필요할 때마다 항시 주입할 준비가 되어 있는 그의 연료가 아니다.


그것은 자기에게만 관대하고 남에겐 한없이 가혹한 것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게 쏙쏙 남의 잘못을 잘 찾아내 지적하는 당신은 얼마나 대단하기에, 그럼 당신의 대안 있는 생각을 말해달라고 하면 그때부턴 입을 닫는다. 실은 잘못에 대한 지적질은 쉽지만 그 잘못을 고치고 개선하는 대안은 내놓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알았으면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결국 남에게 도움도 되지만 자기에게 우선 더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고, 이것은 앞서 언급한 세상이 온통 나를 괴롭히는 위기에 몰렸을 때 자신이 피할 장소를 마련해 주는 역할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현실을 다 무시하고 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세상은 멀리에 있어 자신과 동고동락하지 못하지만, 악마 같은 세상은 늘 곁에서 자신과 희로애락하며 달콤한 말을 속삭이기 때문이다. 세상이 제시하는 것을 그대로 따르느냐 아니면 내가 품고 있는 생각을 실현하며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현실에 매몰되어 망가져 가는 한서진(참고로 신분 세탁 전의 그녀의 이름은 곽미향인데 아갈머리를 확 찢어버릴라라는 욕을 할 때 그 모습이 잘 보인다)을 따르느냐 아니면 현실을 모르고 너무나 이상만 쫓다 상처투성이로 폐기처분되는 이수임(자기가 낳지 않은 아들인데도 친아들보다 더 잘 기르고 있는 작가다)을 따르느냐, 그게 문제인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하는 것은 현실인데 그게 전혀 터무니없는 것도 아니다. 차민혁이 피라미드를 갖다 놓고 매일 그것을 보며 꼭대기로 올라갈 생각을 하라고 자식들에게 다그치는 것도 그게 실은 틀리지 않는 현실을 말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면 그 파라미드에 올라가야만 제대로 사는 것 같은 세상을, 이제 더 이상 그러고 싶지도 않고 그럴 필요도 없는 세상으로 바꿔야 한다. 결국 그 꼭대기에 오르는 사람은 극소수다. 나머지에 해당하는 우리는 그 좁은 땅을 밟지 못해 패배자가 된다. 그 땅을 밟지 않아도 제대로 사는 삶이라고 느끼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이게 우리의 이상이다. 그 방법은 역시 그 좁은 땅에 주는 혜택을 줄이거나 없애야 하고, 그리하여 거기에 가봤자 별 볼일 없고, 처음부터 굳이 오를 필요가 없게 만들어야 한다. 그게 잘 사는 이상적인 세상이다. 그러면 부모도 거기에 오르라고 자식을 더 이상 몰지 않을 것이고, 그냥 자식이 편한 대로 살게 놓아줄 것이다. 지금 부모가 자식더러 거기에 오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부모의 지나친 욕심이라며 비난해선 안 된다. 나도 실은 그러고 있지 않은가. 지금 자식이 거기에 오르지 못하면 제대로 살지 못할까봐 부모입장에선 걱정이 되어 그러는 것이다. 거기에 오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은 세상이 되어야 하고, 각자 자신이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히 먹고 살고 더 나아가 자기를 실현하고 내 가치도 소중하지만 네 가치도 소중한-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이런 세상이 되어야만 부모도 자식에 대한 걱정을 던다.


그러나 역시 이상은 멀고 현실은 가깝다. 지금은 현실을 외면 말고 힘을 기른 다음에 이상적인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너무 현실을 무시한 채 부모의 자식에 대한 욕망도 거절하면 자신은 곧 힘이 쇠하여 자신의 꿈도 이루지 못한 채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 지금은 나만 옳은 것도 아니고 남이 전적으로 옳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며 현실에 발을, 전부가 아닌 약간만 담근 채 몸을 완전히 기울이지는 말고 그러나 내 뜻을 향해 몸의 2/3쯤 기울인 채 가는 것이 옳은 길일 것이다. 이것은 부모의 모든 것을, 전부 거부하진 말고 도움도 받으며 현실을 의식하고 그들이 잘못하는 것이 있으면 반면교사로 삼으며 자기 뜻엔 항상 깨어 있으면서 뚜벅뚜벅 걸어가는 것이다. 그래야 현실에서 한서진의 도움을 받으며, 이수임의 이상을 실현할 수 있다.


남미 전역을 오토바이만으로 주름잡았던 이상주의자 체 게바라는 자신의 실패를 거울삼았는지 현실에서 발을 떼지 않으면서 불가능한 꿈을 품으라.”고 했고, 니체는 악과 선은 따로 있는 게 아니고 자기 뜻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거면 그게 선이고 방해되면 악이라고 했듯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불안과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말은 듣지 않으면서 완전히 무시하지 말고 내 뜻에 도움이 되는 것이면-이상이 아닌 현실에서도-선으로 받아들여 자기의 이상 실현에 도움이 되게 해야 할 것이다. 사물에 대한 혜안을 가졌거나 자기 할일이 뚜렷한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현실(지금은 힘이 약해 자기가 어찌 못하니까)을 일단 받아들이고, 그 뜻을 굳히지 않으면서도 나중에 힘을 모아 자기 뜻을 폈다. 칸트는 사회와 제도의 도움을 기꺼이 받아 자기 연구에 전념하고 그것을 완성시켜 사회에 만연시킨 다음 더 이상 할 것이 없을 때-사회와 그 통념이 이젠 자신을 어쩌지 못할 때-사회를 부패시키는 교회의 폐단을 비판했다. 그러지 않고 젊은 혈기로 연구도 하기 전에 처음부터 교회를 포함한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했다면 우린 그의 위대한 3대 비판서들을 접하지 못했을 것이다. 프란츠 카프카도 일단은 아버지의 말을 다 들어주었다. 그리고는 나중에-아버지가 뭐라고 하지 못할 때-자신이 좋아하는 문학에 몰두하여 변신,판결, 을 창조해 냈던 것이다. 역사에 이름을 새긴 위인들은 사회(현실)를 이용하여 자기의 꿈(이상)을 실현했던 것이다.





[푸른문학신문 편집국 지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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