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남기와 떠나기

남기와 떠나기/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

푸른문학 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남기와 떠나기

입력시간 : 2019-03-03 01:38:24 , 최종수정 : 2019-03-03 01:38:24, 푸른문학신문 기자


늦은 감이 있지만, 올해 퇴직하시는 분들에게 수고 많으셨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일하면서 겪었던 것들이, 잘 지워지지 않는 추억들이, 뭔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낯선 느낌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아직 조직에서 나가지 않은 우리는 그 느낌을 감히 짐작할 수도 없지만 그날은 우리에게도 기어이 오고야 말 것이기에 수고하셨다는 말밖엔 할 말이 얼른 떠오르지 않습니다. 남아 있는 자나 떠나는 자는 같은 조직에 있었다는 것으로 같은 마음일 것입니다. 떠나는 자는 남은 자에게 잘 있으라 하고, 남아 있는 자는 수고하셨다고 거듭 말하고 싶을 따름입니다.

 

일전에 우리 어머니가 세상을 뜨셨는데 모두가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셨다며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이 세상에 와서 좋은 삶을 사시다가 가셨다고 봅니다. 나는 그분에게 좋은 영향을 받았고 그 분도 그것을 알기에 행복하게 떠나셨을 것입니다. 그것은 표현하기도 어렵고 보이지도 않게 지금, 앞으로도 나에게 작용하고 있고 작용할 것입니다. 그게 어떤 식으로 영향을 줄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좋은 것임은 틀림없습니다. 그분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 고생스러운 것 같지만, 본인은 순간순간 행복했고 그 행복한 삶들이 소중한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주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삶은 없을 것입니다. 스스로도 만족하고 그것으로 남에게도 좋은 영향을 주었던 삶이었으니 말입니다.

 

사람은 철학을 몰라도 나이가 들어가면서 철학자가 된다고 합니다. 이제 자신이 살아온 날들보다 살아갈 날들이 적게 남았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그에게 철학이 찾아온다고 합니다. 나는 이 세상에 와서 어떻게 살았는가? 주인으로 살았는가? 그리고 남에게 도움은 되었는가? 내가 죽으면 어떻게 되는가? 처음엔 자식들도 내 죽음에 대해 슬퍼하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가 부모의 죽음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내 존재도 그들에게 희미해지겠지.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남기고 가야 하는가? 내가 이 세상에 있었다고 아직 죽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흔적이라도 남기고 싶은데, 하며 감상에 젖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아무래도 평소엔 생각지도 않았던 것들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 자주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철학자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자신이 지닌 영혼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 이전이나 이후에도 내가 가졌던 의식(意識)은 계속 떠돌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한 인간의 정신, 영혼은 사람이 죽어 몸이 사라져도 몇 천 년 후 다른 몸이나 아니면 우주 먼지로 날아가 다른 우주의 생명체로 옮겨졌다가 그것도 사라지면 다시 몇 천 년 후에 지구상의 다른 인간이 태어날 때 거기에 자리 잡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여 지금의 자신의 영혼과 정신을 계속 갈고 닦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 의식과 영혼은 다른 몸을 빌리지만 계속 나 자신이니까요. 몸은 비록 내가 아니지만 그 정신과 영혼, 어떤 의식(意識)은 계속 사라지지 않고 보존되며 내가 지금 갈고 닦을수록 더 훌륭해진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다른 생명에 깃들게 되면 그 모습 그대로여서 그 생명은 그것을 가지고 더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내 몸에 있는 영혼은 이전 생명의 것일 수도 있으니 이 영혼을 다음 생명에게 잘 가꾼 후 줘야 할 것 같기도 합니다.

 

직장에 있을 때의 추억들이 어느 날 눈을 감고 있는데 새록새록 떠오를지 모릅니다. 어디를 가다가 생각날 수도 있고, 잠자기 전에, 아니면 맛있는 음식을 먹다가 갑자기 생각날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 직장에서의 기억들이 하나하나 떠오를 것입니다. 그것은 즐거웠던 것일 수도 있고, 생각하기도 싫은 기억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그것들이 모두 그동안 내 인생을 구성했던 것들인 것을. 싫다고 지워버릴 수도 없습니다. 좋으나 싫으나 내 인생을 구성했던 요소들이니 소중히 간직하고 그 하나하나를 사랑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감회에 젖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추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마도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것입니다.

 

번연히 팩트(Fact)가 있어도 인간은 자기 고유의 시각이 있기에 그 해석은 다르다고 합니다. 팩트만을 다뤄야 하는 신문도 고유의 시각을 갖고 축소 보도할 수도 있고 내 입장에선 별 것도 아닌 것을 크게 보도할 수도 있습니다. 신문의 견해를 말하는 사설(社說)이 따로 있는 것만 봐도 팩트는 있지만 그 팩트의 진실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도 사가(史家)에 의해 취사선택되는 것을 보면 팩트 자체는 크게 의미 있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 팩트에 대한 해석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조직에서의 30여 년 간의 근무 기억을 나쁘게 해석할 수도 있고 좋게 해석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남이 보기엔 별 활약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나에겐 그것이 좋은 추억일 수 있는 것입니다. 어차피 팩트는 있지만 그것에 대한 해석은 제각각이므로 어떤 해석이 옳고 그르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30여 년 간의 근무가 자기에게 좋은 기억으로 있고 그리고 그런 기억들이 자기다움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그것으로 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살아온 날이 더 많은 사람은 이런 것도 생각한다고 합니다. 지금까진 그래 왔지만 앞으로 남은 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내가 도움을 준 것은 무엇인가?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면 자기도 속으론 편하지 않다고 합니다. 좋은 삶을 살고 있고 그러겠다고 노력이라도 해야 남에게 뭔가 가르칠 때 목소리에 힘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인간은 혼자 살지 못하므로 타인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것을 하면 사는 보람을 더 많이 느낀다고 합니다. 오직 자기만을 위해 살면 자기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사라져 자기에게도 편하지 않다고 합니다. 인간(人間)이라는 용어 자체에도 있듯이 인간은 사람 사이에서 그 진가를 발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남에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자기도 남으로부터 인정도 받으면서 사는 게 인간이 사는 진정한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에게 도움이 되는 것을 남이 볼 때도 보지 않을 때도 하는 것 같습니다. 남에게 도움 주는 것을 보이게 하는 것도 보이지 않게 하는 것도 결국엔 다 자기를 위한 것 같습니다. 이기심(利己心)은 곧 이타심(利他心)이라고 합니다. 자기를 위하지 않으면 남도 위하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자기에게도 도움이 되고 결국 남에게도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앞으로 이것을 찾아내 실천한다면 나도 남도 이 세상에서 다 같이 즐겁게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요.




[푸른문학신문 편집국 지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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