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인간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가?

인간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가?,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

푸른문학 수필가 이태식(LEE TAE SIK),인간은 더 이상 진화하지 못하는가?

입력시간 : 2019-03-04 18:55:07 , 최종수정 : 2019-05-07 22:50:46, 푸른문학신문 기자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 수천 년 전에도 전쟁은 끊이지 않았는데 지금도 전쟁은 멈추지 않고 있다. 우리는 전쟁보다는 평화를 원한다. 그러나 예전과 다름없이 지금도 자기와 뜻이 맞지 않다고 하여 그리고 자기만 살겠다고 남의 것을 빼앗고 자기 것만 지키기 위해 전쟁도 불사하고 있다. 우리 인간도 결국 동물이지만 동물과 다르다고 주장한다. 동물 중에서도 최고인 만물의 영장이라며 우리 스스로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고 그것에 걸맞게 사는 것이 가장 인간답다며 그것을 추구한다. 인간들은 추구하는 게 있다. 우리도 동물이지만 자기들은 동물들과 다르며 그것들과는 다른 차원을 산다고 하면서 인간으로 불리기를 원해서 그에 걸맞게 이상으로 여기는 가치들을 만들어 살아가고 있다. 동물에 속하고 있지만 동물에 가깝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을 경계하고 마치 동물처럼 행동하는 사람을 법으로 격리하고 죽이기까지 한다. 동물에 가까운 분노로부터 이든지 자기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하고 죽이면 법으로 심판한다. 그가 인간으로서 차마 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는 이유다. 이처럼 법을 이용해 인간 같지 않은 인간들을 단죄하며 우린 인간이 정한 이상을 실현하려고 하지만 이제 와서 그 이상이 실현되었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인간이 역사를 이루는 수만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달라진 것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인간다움으로부터 더 멀어지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더 잔혹해져 가고 있고 개인만 생각하고 타인을 위하는 일은 점점 더 뒷전이다


전엔 공동체 속에서 겉으로만이라도 이웃을 생각하고 자기의 행동에 있어 더불어 사는 가치들과 어긋난 점은 없는지 늘 조심하고 경계했다. 그러나 요즘은 도시 속에서 인간이 파편화되면서 자기 행동에 제약이 따르지 않게 되어 자기에게 이익 되는 것만 기준으로 삼아 행동한다. 그런 행동이 법 기준을 준수하기만 하면 혹은 법을 속이기만 하면 아무런 제약이나 제재를 받지 않는다. 인간은 서로 싸우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것, 틀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것, 누구나 차별받지 않고 평등한 것, 남을 돕는 이타주의, 바르고 옳은 사람이 결국엔 승리하는 정의 실현, 한 사람이 전권을 휘두르는 독재가 아닌 민주주의 등을 이상으로 삼아 추구한다. 이런 것이 실현될수록 인간은 진화하고 성장하고 있다며 어떤 희망을 가지며 살아간다. 그러나 허울뿐이다. 이런 이상을 추구하지만 실현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인간이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인간이 생겨난 이래 이런 이상들이 실현되고 있고 실현되었다는 증거는 희박하다. 지금도 평화가 아닌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자신이 자유롭고 싶어도 주변의 방해나 통념 때문에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으며, 돈이 모든 것을 말하는 자본주의 지배아래 노예처럼 사는 사람들이 과연 평등할까, 남을 밝고 넘어서야 살아남는 분위기 속에서 이타주의는 거리가 멀어지고 있고, 옳고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아닌 돈 많은 사람이 결국엔 이기는 구조이며, 자기 뜻이 순수하게 정책에 반영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검은 독재(돈과 결탁한 정치)가 정책을 좌우하고 있는 희망 없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더 든다. 그러면서 인간은 구제불능이며 그 진화나 진보는 요원하다는 생각이 자꾸 머리를 떠나지 않는다.

 

그럼 인간은 진화할 방법이 전혀 없는 종자인가. 그런 희망을 애초에 갖고 있다가는 실망으로 좌절할 운명이 우리에게 이미 주어져 있단 말인가. 우린 옆에서 굶고 있는 북한주민이나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이웃을 굳이 외면하고 저 멀리 아프리카에서 굶주리고 있는 사람들을 더 잘 돕는다. 그들은 우리와 이해관계가 없고 우리와 비슷하지 않아 그냥 불쌍하다는 생각만 든다. 그리고 또 전쟁을 보면 종교 때문에 일어나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다른 종교끼린 싸우는 경우가 드물지만 비슷한 종교끼린 전쟁이 그치지 않는다. 구제역과 조류독감도 그리고 같은 작물만 빼곡히 심어 유전자조작을 해야만 해충에 견디는 농작물도, 사과상자에 있는 사과들이 서로 붙어 있으면 더 빨리 썩는 것도 서로 너무 가까이 닿을수록 더욱 많은 욕망이 생기고 결국 속으로부터 썩어 문드러지는 것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던 생물들이 하나둘 멸종해 가고 나중엔 인간들만 남는다면 같은 종인 인간끼리의 아귀다툼은 생각만 해도 몸서리처지는 일이다. , 이쯤 되면 내가 인간진화를 말할 때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린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경쟁하고 그가 잘되면 배 아파한다. 그리고 그를 미워한다. 우린 류현진이 공을 잘 던지면 좋아하고 계속 잘 던지기를 응원하지만 미워하진 않는다. 이재용 삼성재벌 부회장이 몇 조를 올해 더 벌었다고 그를 미워하지 않고 삼성이 더 잘되어 국익에 보탬이 될 것을 바란다. 그리고 삼성이 일자리를 창출하여 우리 자녀들도 취업에 숨통이 트이기를 바란다.(같은 정치를 하는 전직 대통령들은 집어넣었지만 좀 성격이 다른 경제를 하는 인물이므로 풀려났을 수도 있지만) 그들은 우리와 같은 위치와 처지에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나와 비슷한 위치에 있거나 바로 곁에 있는 이웃을 미워하고 그가 잘 되면 질투하고 그게 가능하다면 도중에 망하기를 바란다. 그가 망해가는 것을 지켜보며 웃는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라 동물에 가깝다. 이런 인간의 추악함은 인간 진화의 가능성을 꺾게 만든다. 카이스트가 자살을 했다는 말을 듣고 우리는 왜 잘 나가고 촉망받는 젊은이가 그랬을까 하고 의문을 품는다. 그는 자기와 처지가 같은 사람과의 경쟁에서 자신이 패배한 것 같아 그 압박감으로 그것을 택한 것이다. 뛰어난 머리를 가진 사람이 평범한 우리와 비교하여 비관하는 것이 아니고 그 세계에서 나름의 경쟁 스트레스로 인하여 비관하는 것이다


우린 비슷한 사람끼리만 경쟁한다. 나와 다른 차원의 사람과는 경쟁하지 않고 그가 잘못되기를 바라지도 않는다. 그는 나와 다르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다. 다르게 사는 것이다. 남과 다르면 그는 나와 경쟁하지도 않고 내가 잘못되어도 웃지 않는다. 오히려 측은한 생각이 들어 도우려 할지도 모른다. 인간이 진화하려면 남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면 된다. 서로 다양성을 갖고 자기만의 삶을 추구하고 그렇게 살고 있으면 남도 나를 해치지 않고 나는 나대로 나만의 삶을 살아 행복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 불안하다는 이유로 몰려다니며 비슷하게 살고 비슷한 것을 추구하면 동료가 내 적이 되고 서로를 밟고 올라서 자기만 살려고 할 것이다. 질투가 생겨 서로 미워할 것이고 그 도움의 손길도 자기와 다른 것을 추구하는 사람을 향할 것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추구하고 실제 그렇게 살아야 살아남을 수 있고 진화할 수 있다. 남과 다른 자기만의 삶과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이 포기했던 인간 진화를 실현하는 길이며 자기가 가장 행복하게 사는 길이다.



[푸른문학신문 편집국 지형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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