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환관' 제도

조선의 네시

왕에 충성하고 비밀을 참는 훈련

역사의 숨은 주인공

입력시간 : 2019-03-17 15:42:18 , 최종수정 : 2019-03-17 15:43:25, 김태봉 기자

조선의 네시 환관

 

왕을 위해 목숨을 바쳐라

비밀을 발설하지 마라

혹독한 수련을 거쳐 입궁한 지 10년째 정식 환관이 되다.

 

그 전에 반드시 거치는 검사

반드시 거치는 신체검사

수염이 나거나

거세되지않은 자는 바로 출궁!

결코 쉽지않은 환관의 길

 

왕의 남자가 되는 법

당나라와 우호적이었던 통일신라의 경덕왕

(신라 경덕왕은 신라 33대 성덕왕의 셋째 아들이다. 곧 경덕왕은 신라35대왕이다.

34대왕은 효성왕이다. 이때는 통일신라 라고 부르던 시기인데 고구려 땅은 모두 중국으로 넘어갔다.

 

그가 탐냈던 당나라의 제도 중 하나,당나라의 제도 중 하나인 환관제도이다.

 

왕의 수족이 되어 온갖 잡일을 처리하니 이보다 더 편할 수 있으랴.

왕비와 궁녀 곁에 두어도 불미스러운 일이없다.” 그런데 아무나 할 수 없는 특별한 신체조건

사지를 뒤흔드는 고통!

수술 후 희박한 생존율!

그 누구도 스스로 환관이 되려 하지않았다.

 

결국 어렸을 때 개에게 물린 자는 모두 환자(환관)가 됐다
-<고려사> 122권 열전 제 35-

 

환관의 시초는 불의의 사고로 성기를 잃은 자였다.

그런데 고려말, 원나라로 끌려간 고려의 환관들

원 황제와 왕족에게 신임을 얻으며 부와 권력을 손에 쥐다!

 

당시 원나라의 의도

고려의 국호를 없애고 원나라의 으로 편입시켜야 하옵니다.”

-<고려사> 122권 열전 제35-

고려를 복속시키려 했던 원나라

이 사실을 알고

원나라 황제의 모후에게 간청해 논의를 중지시킨

-고려 환관 방신우(方臣祐)-

 

*방신우

충렬왕때 궁중의 급사로 있다가 안평공주를 따라 원나라에 가서 망고태라는 이름을 받고, 장알승을 거쳐 천부대경이 되었다.

뒤에 수원 황태후의 시중을 들어 장작원사가 된 뒤 다시 평장정사가 되었다.

 

그 뒤에 원나라는 삭방의 번왕 팔로미사가 이끄는 무리를 압록강 동쪽에 이주시키려 하였는데,

방신우는 고려는 땅이 좁고 산이 많아 농사와 목축할 곳이 없으니 북쪽 사람들이 편안히 살 만한 곳이 못되며, 한갖 동민을 놀라게 할 뿐입니다.”라고 원제에 고해 중지하게 하였다.

 

또한,일찍이 고려를 원나라의 성으로 편입시키려는 논의가 있자 이것 또한 수원황태후에게 고해 그 논의를 중지하게 하였다.

 

그 공으로 충숙왕으로부터 상락부원군에 봉해지고 추성돈신 양절공신이 되었다.

 

그 결과 고려의 왕도 환관에게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고려사> 122권 열전 제35-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진 환관의 권세, 그러자 앞다투어 환관이 되려고 한 백성들.

 

환관을 선망하여 아비는 아들을 거세하고 형은 아우를 거세할 뿐 아니라...

자기 손으로 거세하는 일이 흔했다.”

-<고려사> 122권 열전 제35-

 

신분 상승을 위해 을 버리고 왕의 남자가 된 환관

경복궁을 설계한 환관 김사행(金師幸)

단종을 끝까지 지킨 환관 엄자치(嚴自治)

 

엄자치는 세종,문종,단종까지 세 임금을 모신 조선초 환관이다.

연산군을 꾸짖은 환관 김처선(金處善)

 

*김처선은 조선 전기의 환관이다. 여러 왕을 시종하였고, 연산군이 처용희를 벌이고 음란함이 극에 달하자,

이 늙은 신은 4대 임금을 섬겨 대략 서사에는 통하나, 고금의 군왕으로 이토록 문란한 군왕은 없었소이다.” 라고 극간을 하다 죽임을 당했다.

 

환관은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역사를 지킨 숨은 주인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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