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정원'에 대한 다양한 생각과 글들

소재는 정원

입력시간 : 2019-04-23 23:13:03 , 최종수정 : 2019-08-03 15:29:44, 권호 기자

*사진출처:<unsplash.com>


[뮤즈:sein 작가]


오로지 나만의 것은 아니다

악수가 너의 것이기도 하듯이
정원은 바람의 손을 탄다

내가 심은 묘목과
비가 꺾은 가지들
바람이 심은 씨앗과
내가 뽑은 잡초들
그러나 정원이 피워낸 꽃은
누가 알아볼까

타협 같은 이 땅은
나의 집도 바람의 집도 아니다
정원은 다만 정원의 집
거기서 자란 나무가 다시금 새로운 싹을 틔울 때
비로소 정원은
벽을 허물고 걸어 나갈 것이다



[뮤즈:송진우 작가]


정원은 자연을 가꾸는 노동을 통해서 조성된다. 
땅을 일구고 식물을 돌보고 작물을 수확하는 행위는 인간의 문화적 활동으로 볼 수 있고 그 대상으로서 자연은 인간의 활동영역에 귀속된다. 이상적인 정원을 위해 인간의 노력은 오랜 세월 이루어져 왔고 수많은 지침서와 도구들이 생겨났다. 하지만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상화된 자연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특히 충분한 준비를 갖추지 못한 도전자에게는 더욱 가혹하다. 정원사에 의해 잘 가꾸어졌던 땅과는 다름을 깨닫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들이 꿈꿨던 이상적인 정원은 온데간데없고 대지가 펼쳐 낸 야생은 맹위를 떨쳐 온갖 잡초와 덩굴, 도감에서 뛰쳐나온 듯 득실거리는 수많은 곤충들이나 심지어는 다큐에나 나올법한 대형 포식동물이 서성 거리기도 하고 애써 키워낸 작물은 눈 깜짝할 새 질병에 걸려 고사하기 일쑤다. 미숙한 도전자는 자신의 손이 아닌 자연의 경이로운 생명력이 피워낸 울창한 정글(어떠한 의미로는 황폐해진!)앞에 무릎을 꿇게 된다. 
그러나 이보다 더 골치 아픈 것이 있다. 한 해, 두 해 정원을 가꾸다 보면 마주하게 되는 고민이 그것인데 과연 자연과 문명 사이에서 나는 어디에 자리하는가 하는 물음이다. 울타리를 침범해 오는 저 자연을 막아서기 위해 모든 것을 베어버린 잔디밭을 그 사이에 배치해야 할까? 내 작물을 망쳐놓는 두더지에게는 어떻게 맞서야 할까, 홀씨를 타고 날아와 피어나는 민들레는 어디까지 용인해줘야 할까? 이런 고민들과 함께 자연 속으로 깊이 빠져들어 간다. 종국엔 정원을 가꾸는 데 있어 도구나 지침서보다 먼저 준비했었어야 하는 것은 자연에 대해 지니고 있어야 할 나름대로의 정리와 해석임을 깨닫게 된다. 
이쯤에 도달하게 되면 정원을 가꾸는 행위가 문화적 활동이라는 의미를 좀 더 이해하게 되고 어느새 숙련된 정원사가 되어있을 것이다.




[뮤즈:꽃샘추위 작가] 나무를 사랑한 남자

 그녀는 벤치에 앉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대학생이었고 방학을 맞아 나무 지킴이 봉사에 참가하기 위해 캐나다에 오게 되었다. 그녀는 유기견 보호활동이나 환경에 관한 봉사에 관심이 많았다. 이번 기회는 영어도 배우고 이력서에 한 줄 넣을 수 있었고 여기까지 오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했는지 모른다. 하지만 생각보다 더 멋진 기회였다. 이곳에서 운명적인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캐나다에 거주하는 남자였고 이번 봉사활동으로 만나게 되었다. 그는 섬세하고 유약한 외모에 약간 수줍음을 타는 부드러운 성격과 나무에 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특히 그가 우수에 찬 눈으로 나무의 매력에 대해 설명할 때 반하게 되었다. 그는 고독함을 자처하듯 남들과 살짝 거리를 두었다. 그녀는 예쁘장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고 기회를 보다 자신감 있게 그에게 말을 건넸다. 이제 그들은 만난 지 일주일이 좀 넘었고 오늘은 그의 집에 초대되었다. 
 그가 멀리서 보였다. 그는 항상 하얀 옷이나 검은 옷으로 맞춰 입었는데 오늘은 검은 옷이었다. 
 “많이 기다렸어?” 그가 다정하게 물었다.
 “아니. 여기서 멀어?” 
 “차로 삼십 분 정도 가면 돼. 가서 맛있는 거 해줄게.”

 그의 집은 좀 으슥한 곳에 있었다. 자주 보던 길들을 지나 한적하고 조용한 길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녀는 싱그러운 풀냄새와 사랑하는 이와 함께 있는 기쁨에 취했다. 길이 점점 좁아지고 풀들이 무성해질 때 어느 저택이 보였다. 그녀의 입에서 감탄하는 숨소리가 나왔다.
 “오빠 여기서 혼자 사는 거야?” 그녀가 말했다.
 “뭐, 내가 심은 나무들과 함께 사는 거지.” 그가 우쭐대지 않으며 말했다.
 그는 서둘려 내려 그녀의 차문을 열어주었다. 
 “내 정원 구경할래?” 그가 물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잡고 뒷마당으로 데려갔다. 앞마당에는 나무가 한그루도 없었지만 뒷마당은 정말 놀라웠다. 그곳엔 숲이 있었다. 그녀는 이렇게 다양한 나무가 한 공간에 있는 것은 보지 못했다.
 “여기 정말 넓다. 이런 건 처음 봐.” 그녀가 입을 다물지 못한 채 말했다.
 “꽤 걸렸어. 사람들은 한 장소에 이렇게 다양한 나무를 심지 못할 거라 생각하지만 사랑으로 가능했던 것 같아.” 그는 이번엔 약간 우쭐대며 말했다.
 그의 정원은 뒷마당에서 작은 오솔길을 따라 둔덕까지 이어져있었다. 그녀는 그와 함께 오솔길을 오르며 작은 정글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무들은 생김새가 다 달랐고 어찌나 잘 자랐던지 풍성하고 키가 커서 햇빛 한 줌 들어오지 않았다. 그 덕에 그녀는 잠깐 어지러웠다. 풀냄새가 너무 꽉 차있었고 어두웠다. 그리고 어딘지 모르게 오묘한 느낌마저 들었다.
 “다 내가 사랑하는 나무들이야.” 그가 말했다. 
 “오빤 정말 대단해. 이런 곳은 본 적이 없어. 어떻게 이렇게 만든 거야?” 그녀는 진심으로 궁금했다.
 “난 거의 잠도 안 자고 이런 집을 찾아 헤맸거든. 뒷마당에 사유지가 넓고 한적해서 내 정원을 가꿀 수 있는 곳 말이야. 어렵게 찾았고 부모님이 해주셨어.”
 “돈이 꽤 드셨을 것 같은데, 대단하시다.” 그녀는 그가 부자라는 느낌을 그동안 받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 집은 꽤 비싸 보였다. 그녀는 그의 집이 꽤 잘 산다는 것에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의 자신만의 정원을 만들고 싶던 특이한 꿈에 대해서는 더욱 감명받았다.
 “우리 부모님은..”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날 항상 가둬놔. 난 사실 가족들과 친하지 않아. 부모님은 내가 형을 도와 사업을 물려받길 원했어. 형의 오른팔이 되길 원하셨지. 하지만 난 항상 자연에 관심이 많았고 그중에 나무가 좋았어. 생태학자가 되고 싶다 했을 때 거의 나를 정신병원에 넣으시려 했어.” 그의 표정이 한순간 일그러졌다. 그녀는 항상 온화하던 그의 얼굴이 섬뜩해지자 살짝 놀라기까지 했다. 그녀는 살포시 두 손으로 그의 손을 잡고 쓰다듬었다.
 “형은.. 형은 항상 날 챙겼어. 날 변호해주고 날 지켜줬지. 근데 지금은 형도 그들과 같아. 내가 자랑스러운 아들이자 동생이 아닌가 봐. 항상 날 이상하게 취급해. 내가 나의 숲을 가꾸고 싶다니까 그때도 정신병원 얘길 하더라구. 지금은 날 요양 보낸 셈으로 생각하고 있어. 우린 타협했지. 난 그들 눈에 띄지 않고 난 내가 원하는 걸 얻고.” 그의 표정은 이제 덤덤해졌다.
 그녀는 마음이 아팠다. 그가 남들과 거리를 뒀던 이유는 그가 상처 받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그가 너무 불쌍해서 눈물마저 고였다.
 “오빤 이상하지 않아. 얼마나 멋있는데.” 그녀는 그의 얼굴을 사랑스럽게 보며 말했다.

 저녁이 되자 그의 오두막에서 식사를 하였다. 그는 촛불과 와인까지 준비해서 그녀에게 근사하게 차려줬다. 둘은 기분 좋게 취해있었다. 
 그는 알고 보니 그녀도 알만한 기업의 자제였다. 하지만 그의 힘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록 그녀는 돈이 모든 행복의 열쇠가 아니라는 사실을 더더욱 깨달았다. 그는 마치 그 집안의 유령처럼 철저히 무시당했고 억압당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가 그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얼마나 빨리 빠졌는지에 대해 이야기할 땐, 그녀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이었다.
 “나의 라일락 나무가 돼줘. 너를 보면 라일락이 생각나.” 그는 수줍은 듯 말했다. 
 “그럼, 난 언제나 오빠의 라일락이야.”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평생 나와 함께 해줘. 봄이 되면 너를 맡을래.” 그가 말했다.
 “응, 평생 함께할게.” 그녀는 이제 진지해졌다.
 그는 그녀에게 입술에 부드럽게 자신의 입술을 포갰다. 곧이어 그들은 격렬한 키스를 시작했다.
 그와 사랑을 나누며 그녀는 자신이 헤픈 여자로 보이거나 그가 그럴듯할 멘트로 꼬시는 거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을 지워냈다. 모든 것이 상관 없어졌다. 
 그녀는 그를 너무나 사랑, 사랑했다.

 새벽이 되어 그녀는 풍만한 행복감에 젖어 잠에 들었다. 그는 그녀의 볼에 키스를 하고 도끼로 그녀를 베었다.


 그는 그녀의 몸에서 심장을 따로 빼고 바로 한 시간 전 가져온 작은 라일락 분재 아래 심었다. 그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몸으로 이뤄진 비료를 뿌렸다. 
 “넌 정말 아름답게 자랄 거야, 사랑해.” 그의 눈엔 눈물이 고여있었다.
 “평생 함께 해줘서 고마워, 정말 사랑해” 이제 그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이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무라는 존재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그는 그녀를 심게 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는 흰옷에 묻은 흙을 털고 삽을 든 채 홀린 듯이 행복한 기분으로 걸어 나왔다. 그의 등 뒤로 울창하다 못해 빽빽한 숲이 떨고 있었다.





[뮤즈:지히 작가] 정원

매일 나를 만져주던 손길
아껴주던 눈길을 기억해
그 봄날을 

내 품에서 울고 나를 의지하던 
아름다움을 잃을 때도 웃어주던 

다른 날보다 좀 추운 밤을 보내고 나니
너의 밤도 길었는지 보이지 않네 

제일 예쁠 때 나를 보러 와 줘
아직 너를 위해 그늘을 만들어 줄 수 있는
정원은 아직 너를 기억해




[뮤즈:권 작가]


그곳은 환한 꽃밭과 새초롬한 별들이
있고.
향기가 나지만 꺾지 못하는 꽃, 빛나지만
지긋하지 못한 별들이 있다고도 한다.

그곳의 평평하지도 질퍽하지도 않은 흙을
한 바퀴, 두 바퀴를 돌 때쯤이면
흙 위에 패인, 그 행위에 의한 감각보다는
머릿속에 패인 발자국이 오히려 더 사실 같은 곳이라고 한다.

그곳은 기억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분명히 원형은 아니었다고 한다.
자기 두상 크기쯤으로만 담을 수 있는 곳이기에,
머리둘레만큼 찌그러진 형태라고 한다.

그곳은 없어진 길 위로 걸어야지 들어설 수 있다고 한다.
가고 싶은 이에 눈을 감아야지만, 비로소
그곳에 눈동자를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뮤즈:이수민 작가]


인간만큼 모순적인 존재는 없다, 고 나는 단언한다.

인간은 홀로 살아나갈 수 없는 존재다.
망망대해에 교류할 존재 하나 없이 고독한 존재가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으리라고는 당신도 생각하지 않을게다.

하지만 관계에 대한 뿌리 깊은, 절대적인 욕구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또 고독을 찾는다. 개인 정원이라던가, 개인 리조트, 프라이빗 파티, 어쨌든 홀로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모든 것에 우리는 기꺼이 지갑을 연다. 모두에게 주어지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하고서.

그러니까 우리는 관계를 원하면서도 원하지 않는다.
관계를 위해서는 가까이 내려가 어울려야 함에도
높은 곳에 올라 고매한 존재가 되어 대중의 경외를 갈망한다.

그러나 도시인의 삶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정원은 고사하고 시야에 콘크리트 구조물이 들어오지 않는 하늘을 찾기 힘들 정도이니까.

도시는 어쨌든 공원을 필요로 했다.
삶의 여유를 찾기 위해서, 자연의 흔적을 느끼기 위해서라도.
획일화되고 규격화된 세상에서 공원보다 슬픈 공간이 없지는 않겠지만
공원은 인간이 자연에 살았다는 흔적 기관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먼 훗날, 학자들이 이 시대를 돌아보면 인간은 정원이 아닌 공원으로 숨을 쉬게 되었다고 말하며 도시를 하나의 생명체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할지도 모르겠다.





[뮤즈:전영재 작가] 기억

 떠나기 전에, 정원에 불을 질렀다. 사이렌 소리를 들으며 달리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상념이 돌고 돌아 그 자리에 다시 서서 불탄 자리 바라보니 무참히 진 자리에 수목이 한참을 자라나서,

문득 주저앉아 정원은 태어나는 것이구나, 죽고 다시 태어나 내 앞에 다시 나투는 것이구나 하고

무심한 정원 사이에서 나는 홀로 서성거렸다





[뮤즈:심규락 작가] <정원(定員)> 

부처님, 보이지 않는 마음에도 정원 이란 게 있을까요
다른 사람이 편히 들어와도 되는 그 정원(庭園) 말고
규정에 의해 미리 정해진 인원수, 정원(定員) 말입니다
만일 있다면요, 대개 그 규정은 왜 누군가에 의해 독단적으로 정해지는 겁니까
난 말이죠, 상호 간의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데요

부처님, 인간 모두에겐 각자의 정원이 존재하는 건가요
그 사람의 정원에 머물려 했지만, 정말 오랫동안 머물려 했지만
정원 초과랍니다. 
규정이 바뀌어서 당분간 0명만 허락된다네요
책가방과 등하교할 때부터 그 사람이 어깨에 메어온 우울증이 규정을 송두리 바꿨습니다

부처님, 지금 절은 안 하고 이렇게 눈만 부릅뜨고 서있는 제가 웃기죠
사실 나도 웃겨요, 하얀 가운의 샌님들과의 대화를 난 이미 오랫동안 해오고 있으니까
그럼에도 불가하고 그 사람을 미리 도와줄 수 없었다는 게 참 바보 같네요
마음껏 웃으셔도 됩니다. 
그렇게 엄지와 검지를 편히 맞닿게 하시면 제가 OK라고 생각하라는 거예요, 뭐예요

부처님, 절 비웃으셨으니 대신 소원 한 번만 들어주세요
그 사람의 격리치료고 뭐고 얼른 낫게 해 주세요, 제발요
이런 나한테 말고 그 사람한테 행복을 내려주세요, 안돼요?
그럼 내 정원을 공양드릴 테니 그 사람의 정원을 더 키워주면 안 돼요?

부처님, 부처님. 부탁드릴게요. 
그래서 부처님의 제한 없는 정원으로 이렇게 두 손 모으고 들어온 것이겠지요
그래서 지금 무릎 꿇고 간절히 절을 올립니다
제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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