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남자 귀걸이

조선의 전통문화

왜인과 구분하기위한 변신

조선군대에서의 공을 위한 음모

입력시간 : 2019-11-16 22:28:27 , 최종수정 : 2019-11-21 13:32:30, 김태봉 기자

귀걸이는 조선의 전통문화

 

임진왜란

1597년 정유재란

명나라 사신 접반사,이덕형과 경리,양호의 은밀한 대화

근자에 조선군대에서 자신의 공을 세우려는 자들이 조선 사람을 죽여 마치 왜적인 양 꾸미는 일이 벌어지고 있사옵니다.” 대체 이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

? 조선인을 왜군으로 둔갑시켜?”

-조선왕조실록 선조30-

왜인첩자를 구별할 유력한 단서가 있으니 지금 당장 병사들의 귀를 수색하라

 

유력한 단서: ()

전쟁중 떨어진 명령

지금부터 병사들의 좌,우 귀를 샅샅이 살펴보라.귓볼에 구멍이 있으면 조선인이요 구멍이 없으면 왜인이다!

 

대체 왜?

귀고리 구멍. [당시 조선인들 특히 남자들은 귀고리를 하기위해 귓불에 구멍을 뚫었다는 것.]

머리카락 한올도 함부로 하지 않았던 유교의 나라.

머리카락 한 올도 함부로 하지않았던 조선 그런데 정말 조선시대 대부분의 남자들이 귀고리를 했을까?

 

19974월 서울 은평구.

조선시대 무덤 발굴지에서 나온 예사롭지않은 희귀유물 한 점.

둥근 열매 모양의 장식이 달린 은제 귀고리.

재질: 순도99.9%의 은

크기: 구슬의 지름 약2cm

무게:6.03g 정도

무덤의 주인:남자.

 

금은 제품은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 아니니 사대부자손들의 귀고리 등을 제외하고는 금은의 사용을 일절 금한다.

-세종실록 ,116일자-

 

조선시대 남자의 귀고리:착용자의 신분과 권위를 표현하는 수단.신분이 높을 수 록 금은이 굵은 귀고리,신분이 낮을 수 록 금은이 얇은 귀고리.

조선시대 남자의 귀고리는 나이를 막론하고 남자들의 사치,와 멋 부리기 용도.

 

그렇다면 언제부터 남자들은 귀고리를 했던 걸까?

 

그림속에서 포착된 남자의 귀고리

귀고리를 한 고구려 사신,신라 사신,백제 사신.

1500년을 지켜오던 풍속.그러던 15725. 명나라 사신을 만난 선조.

귀고리를 한 조선인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오랑캐의 풍속이 아닙니까?”

 

갑작스럽게 선조가 내린 어명!

우리나라의 크고 작은 사내아이들이 귀를 뚫고 귀고리를 달아 중국 사람에게 비웃음을 받으니 부끄러운 일이다. -선조실록 5928일자-

 

유교의 발달과 더불어 눈엣가시가 된 귀고리. 그렇게 역사에서 사라져버린 남자들의 귀고리 문화.

조선시대 남자는 귀를 뚫었다. 귓불에 난 귀고리 구멍은 조선인의 징표였다.

 

<자료 출처: EBS역사채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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