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ㄸㅗㅇ'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소재는 ㄸㅗㅇ

권호 기자

작성 2019.11.23 13:25 수정 2020.02.20 21:32
<출처: unsplash>




[뮤즈: 정진우 작가]


<목재의 구도> 

샹들리에
빛과 어둠을 생각
구도에 따른 빛의 생기와 흐름을 생각

내 앞에 한 그루의 나무가 서 있다

건축의 구조
원목의 형태

원기둥
사각기둥
여러 모양의 기둥들

가끔은 무늬가 되기도 한다

원목의 울림은 그때부터 시작된다




[뮤즈: 송진우 작가]


*[뮤즈 모임] 'ㄸㅗㅇ'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에 게시된 작품의 보완입니다.


[1]
 본 사건은 50세 남성이 자택 내 변사한 사건이다. 약물 투여에 의한 자살로 보여진다. 변사자는 사후 존엄성 유지에 집착한 경향이 보이고 법의학을 통해 사체 보존을 시도한 특이사례로 기록한다.

[2]
부검 결과
1. 왼쪽 팔에 열창 및 조직 괴사
2. 각막 손상
3. 구강 내 이물질로 인한 미세 출혈 및 점막 일부 탈락

기타 부검 결과
- 구강과 식도에 걸쳐 직물 발견
- 소화기 내 음식물이 발견되지 않음

[3]
부검소견서.
 왼쪽 팔에 정맥주사 흔적과 부검 과정에서 고소한 아몬드 향으로 보아 약물투여에 의한 사망으로 추정됨. 시강 여부에 따라 사망 후 12~24시 경과된 것으로 판단. 각막 손상은 청산가리 투여에 의한 부작용으로 보임. 구강 내 다른 상흔이 없고 직물 삽입 방향으로 보아 자의에 의한 흔적으로 보임.

[4]
사망확인서.
 약물에 의한 산소부족, 호흡 기능 저하로 인한 사망. 12시간 전을 사망 시간으로 추정.

[5]
수사 소견서.
 변사자는 발견 당시 서재에 위치한 의자에 앉아 있었으며 두발과 의복을 단정히 한 상태였다. 동거인은 해외여행 중으로 파악되며 외부인의 방문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자택의 잠금장치와 주변 CCTV 조사 결과 외부 침입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최초 발견자는 지역 순찰관으로 확인을 요청하는 신고를 받아 방문하였다가 변사자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신고자는 변사자의 지인으로 전날 밤 방문해달라는 문자를 받고 변사자의 자택으로 향했지만 문이 잠겨있고 연락이 되지 않자 신고하였다고 진술했다. 문자메시지는 변사자가 예약발송 시스템을 이용하여 지인에게 전송되도록 조작한 것으로 보인다. 신고자와 순찰관은 서재에서 유서를 발견해 경찰과 병원 관련 부서에 알리고 변사자가 유서를 통해 요청한 사후 처치법에 따라 주변 환경을 정돈한 것으로 파악된다. 부검 결과와 책상에서 발견된 주입기와 투약품으로 보아 자체적으로 약물을 투여해 존엄사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한다. 발견 시점은 시강 여부와 예약 문자의 시간을 역추적하여 사망 후 약 12시간 경과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특이점으로는 변사자의 구강과 식도에 걸쳐 흰 천이 발견되었고 소화기관 내 음식물이 없는 점을 보아 사망 전 2~3일 동안 단식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후 경직에 대한 인터넷 검색기록과 유서의 내용을 보아 사망 후 식도를 통해 음식물이 새어 나오지 않도록 의도한 것으로 보인다. 주변인들은 평소 깔끔한 성격이며 결벽증 증세가 있었다고 증언하였다. 변사자는 사후 수습과정에서 품위 유지에 집착하여 계획된 자살한 듯하다. 하지만 장 내 박테리아 증식에 따라 소량의 대변이 배출되었고 이를 예상하여 유언을 통해 지인에게 사후처리를 부탁하였으나 현장보존을 위한 순찰관의 만류로 시행되지 못하였다.




[뮤즈: 김지해 작가]


만약 내 손에 데스 노트가 들어온다면 어떻게 쓸 것인가에 대해 친구랑 얘기한 적이 있었다. 가장 누굴 먼저 죽일까? -우리에게 아무도 안 죽이는 선택지는 없었다.- 친구는 요즘 담당하고 있는 클라이언트인 오 팀장을, 나는 전 회사 사수인 임 편집장을 죽이기로 했다. 그들을 어떻게 죽일까에 대해서 얘기를 많이 나눴는데, 친구는 내게 명동 길거리 한복판에서 똥 싸다 심장마비로 죽게 만드는 것이 어떻겠냐고 했고, 나는 이보다 치욕스러운 죽음은 없을 거 같다고, 친구의 기발한 잔혹함에 대해 칭찬했다. 
항상 나는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살고 싶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몰라도 잘 굴러가는 삶. 근데 온실 속의 화초는커녕, 길가의 잡초 수준으로 살고 있다. 사회의 쓴맛은 전 직장에서 이미 볼 대로 다 봤다. 열정 페이에, 가족 회사에, 과다한 업무량에 심지어 그 작은 회사에 사장, 상사, 동료 누구 하나 제대로 된 인간이 없었다. -몇 안 되는 제대로 된 인간들은 얼마 못 버티고 나갔다.- 그때를 생각하면, 한숨만 나온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여기에 적어볼 수도 있겠지만, 그다지 생각하고 싶진 않다. 
이 나이쯤 되니까, 주변인들도 사회생활을 하고 있고, 그들도 정도의 차이일 뿐 모두 사회의 쓴맛을 봤다. 회사에 대한 이야기라면 모두 1박 2일은 밤을 새우면서 할 수 있게 됐다. 똥과 같은 인간들은 어디에나 있고, 게다가 우리 모두가 그 똥과 같은 인간이 안 되리라는 보장도 없이 하루하루 보내는 기분. 그다지 유쾌하지 않다.
불교에서 인생의 고통 중 하나가 보기 싫은 사람을 매일같이 보는 것이란다. 어쩜, 이처럼 탁월하게 잘 와닿는 고통이 있을까. 사회생활을 하면, 겪게 되는 가장 일상적인 고통 아닌가. 여전히 전 회사 다니던 시절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 이젠 그 분노도 오래된 것이라 놓을 때도 되었는데 말이다. 나만 계속 감정을 소비하는 꼴이니까. 올해가 지나고 내년이 되면, 어쩌면 그 시절을 그리 나쁘게만 생각하지 않는 때도 곧 찾아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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