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2020'에 대한 첫 번째 이야기

소재는 2020

권호 기자

작성 2020.01.08 22:06 수정 2020.02.20 21:28
<출처: unsplash>





[뮤즈: 김명철 작가]


<새해>

무거운 1이 바위의 모습으로 떨어져
오게 될 바닥은 365로 흩날린다

꽃잎으로
수수께끼의 자음과 모음으로

꽃잎을 밝고
걷어차고 파헤쳐

글자들 줍고
모으고 맞춰보니

바위였다

또 잊고
왜 항상 바위냐며
던져놓고 떨어졌다며
무거워했었구나

또 잊고
돌을 쌓으며
뭐 하는지도 모르고
꽃잎을 밟으며
뭐가 오려나




[뮤즈: 심규락 작가]


<자연수러움의 기쁨> 

(중략)

다사다난했던 내 고등학생 시절 서, 기억에 남는 이들은 그렇게 다섯 명 정도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H가 있었다. 사실 H와 직접적으로 함께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다른 이들에 비해 너무 늦게 알아서였을까. 그래도 돌이켜 보면, 가장 인상적으로 내 머리 어딘가에 기억됨은 분명했다.

때는 2007년, 30대로 처음 접어든 내게는 나름 꽤 오래전 일이라, 기억을 더듬는 것이 한참 걸렸음을 인정해야겠다. <무슨 무슨 글로벌 리더 전형>, <어떤 어떤 창의적 인재 모집 전형> 등 대한민국 대입 입시가 표면적으론 다양한 인재를 모집하려는 양상에 광기 어릴 정도로 슬슬 미쳐가던 시기였다. 그로 인해 대학 내 서류 심사자들의 눈을 끌기 위해, 나름 특출나야 하는 업적을 세우려고 고등학생 나부랭이들은 잠 못 잔 고양이 마냥 하악질을 해가며 발버둥을 쳐대던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사실 그 선두에는 내가 있었다. (하지만 해명하자면 영어신문기자 활동, 영어 경시대회 수상 등, 나는 내가 좋아서 자발적으로 이에 투신한 것임을 조심스레 말해본다. 뭐,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진 않겠지만……) H가 떠오르는 이유는, 내가 유일하게 기피하던 KMO (한국 수학 올림피아드) 참가를 함께 했기 때문이다. 수학에 있어서 나는 좌뇌가 없다. 자조 섞인 표현이나 몹시 사실이다. 외국어 고등학교라서 모의고사 나 언어를 잘한다는 것은 좋은 메리트이나, 그것이 추천으로 이어져 학교 대표로 억지 참가한다는 일은 내겐 매우 끔찍한 ‘사고’이다. 차라리 그 장시간의 시험시간 동안, 기숙사에 놓고 온 PMP 속 <프리즌 브레이크>나 <House M.D.>를 보는 편이 훨씬 나은 일인데…… 이것이 나의 태생적 혹은 자연스러운 사고 체계이자 행복 추구의 방편인데 어떡하겠나. 

H는 이런 나와는 매우 달랐다. 이과적 소양이 뛰어났으며, 항상 뇌 전구가 밝게 켜져 있어서인지 피부도 하얗디하얬다. 왜소한 체격이나 사시 보유 등의 사항들은 그를 친구로서 가까이 대하고 싶어 하는 마음이 드는 것에 있어 도통 문제가 되지 않았다. H는 착했고, 똑똑했고, 무엇보다 예전부터 나를 (친구로서) 먼저 좋아해 줬다. 나 역시도 그가 (친구로서) 좋았다. 
(여담이지만, 내신 시험 범위 내 지구과학 파트와 관련하여, 내게 큰 도움을 준 것에 아직도 개인적으로 감사함을 느끼고 있다.)

다시 KMO 시험일로 돌아와, 우리는 시험장인 아주대학교로 함께 향하고 있었다. H는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가 떠오르면 그것에 대해 아주 격양된 어조로 행복한 표정을 띤 채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곤 했다. 수학에 대한 얘기도 이에 해당되었다. H는 자연수를 좋아했고 그 이유론 첫째, 자연 태생에서 온 듯한 어감 그리고 둘째, 수학자 크로네커가 말한 바 있듯이 수학에 있어서 자연수는 가장 그 근간을 이룬다는 점을 들었다.
(크로네커는 “자연수는 신의 선물, 나머지는 모두 인간의 작품.”이라 역설한 바 있다.)

공부가 아닌, 미국 드라마나 신문 읽기 같은 여타 다른 일들에 흥미를 느끼는 것이 나의 태생적 취향이자 자연스런 행복 추구론인 것처럼, 이 역시 H에게 그런 것이다. H는 세상을 수학적으로 바라보는 걸 좋아했고, 나는 그러한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왜 처음부터 과학고나 상산고 같은 다른 자사고에 입학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 일쑤였다. 
(예를 들어, 그는 101과 관련된 수를 떠올릴 때면 유독 행복해했는데, 누나 이름이 백 하나이기 때문이란다.)

시험장에 비교적 일찍 도착해서인지, 약 4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매점에서 데미소다와 다이제를 사서, <모의 UN 대회>와 관련된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 (그렇다. 난 태어날 때부터 이미 이 날을 포기해왔던 것임을 인정한다.) H는 느닷없이 101의 배수인 2020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돌이켜 보자면, 그는 전부터 종종 2020에 대한 흥미를 표하곤 했는데, 그 당시로부터 13년 뒤의 시기를 왜 미리부터 생각하는지, 두개골 아래 우뇌만 보유한 나는 도통 몰랐다.

“2020은 하샤드 수 (Harshad Number)인 자연수라 기뻐. 그게 뭐냐고? 주어진 진법에서 그 수의 각 자릿수 숫자의 합으로 그 수가 나누어떨어지는 수…… 그냥 예를 들어 말하자면, 2+0+2+0은 4이고, 2020은 그 4에 나눠떨어지지? 그럼 2020은 하샤드 수야. 인도의 수학자 카프레카가 정의한 건데, 더군다나 101의 배수라 더 좋아!”

“대상의 수를 세는 것이 수학의 출발인 만큼, 자연수인데 그 수이기도 하니 2020이 더 좋게 느껴지겠구나. 그럼 너는 대학자였던 버트런드 러셀을 싫어해? 자연수마저도 관념의 표상이지,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은 아니라고 했으니.” 
(우뇌 유일 보유자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논술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이 정도 기본 소양쯤은 갖고 있다는 항변을 해본다. 참고로, 러셀은 생전에 “두 마리의 꿩과 이틀이 자연수 2의 예들이라는 것을 발견하는 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렸을 것이다.”라 말한 바 있다.)

“난 수학과 수학자는 죄가 없다고 생각해. 이를 악용하는 사람들이 잘못된 걸 거야. 마치 자연은 죄가 없지만 이를 못살게 구는 이들이 비난받는 것처럼! 하지만 난 개인적으로 숫자 0은 싫어. 별로 가까이하고 싶지 않아.”

“그럼 반대로 2020은 왜 좋아?”

“울 아빠 기일 20주년 되는 해 거든. 20도 하샤드 수이고, 101 하고 곱하면 딱 2020이 되니깐.”

“아, 미안……”

“아니야. 하샤드 수는 산스크리트 어 harshad에서 유래되었어. ‘기쁨을 준다’라는 뜻인 만큼, 난 2020을 생각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져. 그래서 다른 고등학교로 안 가고, 여기로 입학한 것도 있어. 아빠 납골당이 여기랑 제일 가까워서 주말 외출이 가능할 때마다 거기로 갈 수가 있거든.”

무거워야 할지 밝아야 할지 모르는 시간이 흐르고 어느새 시험장 강의실에 들어가는 시간이 당도했다. H는 아무 일 없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입장했고, 나 역시도 데미소다를 다 비우고 잇따라 들어갔다. 몇 시간 동안 진행되는 그 타의적 대장정이 시작되고, 당연하게도 난 한두 시간 이후엔 필기도구로 수학인 척하는 탄원서를 답안지에 더 이상 써 내려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남은 시간 동안 미국 드라마나 <모의 UN 대회>가 아닌, H가 남긴 말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더 파고들자면, 수를 세는 건 일대일 대응의 개념을 지니고 있고, 어떻게 보면 현대 수학적 관점에서 집합론적 구조에 입각하자면, 자연수는 0으로 시작하건 1로 시작하건 크게 상관이 없는데 H가 굳이 0을 유독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아마도 아버지의 부재(0)를 어린 나이에 오롯이 느끼기는 싫지만, 이 세상의 관념 아래서는 형식상의 0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꺼려져서 그런 것이 아닐까. 더군다나 그런 수인 0은 애초에 0으로 나눠질 수 없으니, 하샤드 수도 아니며, 그렇기에 H에게 ‘기쁨을 주는 수’가 아닐 터이니 말이다. 적어도 버트런드 러셀의 말대로 자연수마저도 관념의 표상일 순 있겠지만, H에게 수와 행복 그리고 아버지는 마음속에선 실제로 존재하는 대상일 것이니.




[뮤즈: 송진우 작가]


<2020 원더키디>

"네. 그래요. 전 그들을 이해해요."

앞에 앉아 있는 남성의 침묵 속에서도 부연의 설명이 필요하단 압박을 느끼며 다시 말을 이어 나간다.

"당신도 그 성 안을 수없이 날아보면 알 거예요. 아이캔이 다녀간 후 의문의 기계들은 동작을 멈췄어요. 그리고 우리에게 스릴이라는 목숨을 건 상황에서 느끼는 극도의 흥분도 같이 사라졌어요. 그 공허함 속에서..."

우리 단원들은 이 기계성에 숨어 살며 생존을 위해 조난당한 우주선 무덤을 배회하며 살았다. 위태롭기 그지없는 호버보드 하나에 몸을 맡기며 지금껏 살아왔지만 기계성이 멈춘 후 하나 둘 자살하는 단원들이 생겨났다.

"나도 그런 충동을 느꼈어요. 난 차마 실행에 옮기지 못했을 뿐"

"스릴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숨겨져 있었던 따분함이 우릴 덮쳤죠. 보딩이 따분하다니 우습죠?"

"우리에게 여긴 집 같은 장소예요. 익숙하죠. 그리고 고철더미지만 우리에겐 그런 모습이 정감 가요. 이 포근하고 익숙한 공간을 홀로 비행하다 보면 이상한 생각이 떠올라요"

갑작스레 찾아온 평온한 비행에서 우린 전에 느끼지 못했던 감각을 느끼게 됐다. 귀를 스치는 바람 속에서, 시체가 즐비한 우주선 무덤을 날고 있자면 그 시체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평온해지는 만큼 우울한 생각들도 쉽게 떠오르곤 했다.

"높이 날면 우주선도, 사람이었던 형상도 개미 같아져요. 그들에게 감정을 느끼다가도 보잘것 없어지곤 했죠.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있자면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돼요"

조용하던 우리의 삶은 온 우주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우리 중 누군가는 위협받고 무너져 가던 일상을 구원받게 되리라 기대하고, 다른 이들은 세간의 관심 속에 벌거벗겨져 가는 치욕감을 느끼고 있다.




[뮤즈: FYDFYD 작가]


<꼬랑지와 물결>

꼬랑지와 물결은 늘 손을 잡고 제 앞에 찾아와요.

어느 날은 꼬랑지의 키가 조금 더 크고 또 어느 날은 물결의 폭이 더 넓기도 해요.
어느 한쪽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뿐이지 절대 혼자 찾아오지 않아요.

저에게만 이렇게 찾아오는 건지, 남들 앞에도 이렇게 찾아오는 건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제게는 그래요.
단 한 번도 혼자 찾아오는 적이 없어요.

작년에는 키 큰 꼬랑지가 찾아왔어요.
꼬랑지는 불쑥 찾아와서는 다짜고짜 고개를 들이밀고 소리쳐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제 손을 잡고 끌고 가요.
물결은 잔잔하게 발뒤꿈치에 일렁일 뿐이에요.

올해는 넓은 물결이 찾아왔어요.
그래도 옛날 그때처럼 성난 얼굴은 아니네요.
살포시 제 손을 잡고 쓰다듬으며 꼭 안아주었어요.
그동안 외면했어서 화가 많이 났을 줄 알았는데, 따뜻하게 안아주었어요.
어떻게 발을 딛을지 몰라 허우적이는데, “여기.”, “여기는 아니야.”하며 디딤돌을 알려주네요.

꼬랑지와 물결은 매해 찾아와요.
여름이 끝날 무렵쯤이면 내년에 또 보자며 어깨를 토닥토닥해주고는 들어가요.
그리곤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곧 보자는 엽서 한 통을 보내죠.
엽서의 내용은 같이 했던 약속을 기억하고 있는지, 지켰는지에 대한 물음이에요.

어떤지 다 알면서 그래도 늘 기대를 놓지 않는 귀여운 아이들이에요.
꼬랑지는 제 손을 꼭 잡고 물결은 제 어깨를 꽉 잡으면서 늘 당부하거든요.
그렇지만 매번 그렇게 약속을 할 때며 둘의 눈동자도 같이 흔들려요.

그렇게 걱정되면 그 해가 끝날 때까지 같이 가면 되는데.
매번 봄이 지나고 여름이 끝나면 돌아가버려요.

올해 찾아온 꼬랑지와 물결은 끝날 때까지 같이 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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