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2020'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소재는 2020

권호 기자

작성 2020.01.17 22:50 수정 2020.02.20 21:28

<출처: unsplash>




[뮤즈: 심규락 작가]


<운명: 화살 세 발 그리고 점 하나>

인간이 세상에 남기고 간 눈물이란 게 있다면, 조수간만의 차라는 게 바로 이런 것일까. 그 수분이 한없이 어린 고양(高陽)시는 그래서 고양(膏壤)일지도 모르겠다. 이곳 화장터는 연말, 정확히는 새해의 일출을 한 번 남겨놓은 날에도 망자와 산 자로 붐볐다. 가는 데 순서 없고, 일말의 경고마저 없기에 오직 운명 만이 그 모든 것에 있어 도로 표지판 마냥 차갑게 세워져 있는 듯했다. 수골실 옆 가, 화장이 이뤄지는 공간은 칸 별로 나눠져 있었고, 그 과정이 이뤄지는 동안 많은 이들이 줄 서서 상실이란 단 하나의 주제의식을 공감하는 모습이 보였다.

2019년 12월 31일, 고양시 덕양구 통일로 504에 위치한 서울 시립승화원으로 향한 이유는 시 차원에서 무연고 사망자들의 공영 장례가 치러지기 때문이다. 연고는 없고 오직 가난 만이 즐비한 이곳 서, 기도를 통해 그들에게 잠시라도 지인이 되어드리기 위함이 목적이었다.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나 역시도 어찌 보면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더더욱 가고자 했으리라. 

화장이 이뤄지는 구간은 여러 개 있었는데, 8번 칸과 10번 칸은 각기 인산인해를 이룬 반면, 그 사이에 위치한 9번 칸은 모세의 기적을 몸소 보이듯, 아무도 가는 길에 대한 배웅길을 나오지 않은 게 눈에 띄었다. 가난이란 게 본디 뭉쳐 살듯이, 적막함과 외로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대략 20분에서 25분 정도 혼자서 9번 칸을 향한 앳된 기도를 드리고 난 뒤 고개를 돌리자, 바로 옆에는 커다랗게 자리 잡은 조문객 대기실이 보였다. 사연 없는 사람 없기에 사연 없는 죽음 역시 존재하지 않듯, 다양한 대화들이 승화원 직원들의 발걸음처럼 분주히 오갔다. 

집이 위치한 반포동서 고양시까지 약 두 시간 정도 걸려 이동해서 일까, 화장터의 엄중함이 내 굳어진 수분을 승화시켜서 일까. 영문은 모르겠다만 아무튼 이온음료를 마시기 위해 자동적으로 대기실 안 자판기로 발걸음을 옮겼다. 겨우 하나 남은 의자를 발견해 앉았고, 나의 목과 귀는 한없이 열리기 시작했다. 

“잔병치레 없이 소천(召天) 하셨으니, 하늘나라서 맘 편히 계실 거라 믿어요.”

“장로 님은 평소에 덕을 많이 쌓으셨으니, 하나님께서 기꺼이 넓은 팔로 안아주실 겁니다. 우리가 더 많이 기도해드리자고요.”

“그럼요, 그렇고 말고요. 이렇게 많은 분들이 와주신 것부터 장로님이 평소에 얼마나 좋은 일들을 줄곧 해오셨는지 알 수 있는 것 아니겠어요?”

아까 8번 칸에 계셨던 분들이었다. 같은 교회의 신도분들이신 것 같았다. 그분들의 말씀을 미루어 생각해보자면, 소천하신 장로 님께서는 생전에 의미 있는 일들을 해오셨고, 주변에 많은 도움을 주신 것 같았다.

“올해가 삼재(三災)라 그렇게 말했는데, 결국 못 넘기고 가셨구나 그래……”

“아이고, 내가 집까지 찾아가서 손톱이랑 머리카락도 받아서 그 스님께 갖다 드리기까지 했는데…… 운명이란 게 참으로 가혹하지, 갈 사람은 가게 되나 봐요……”

“아니, 글쎄 내가 연초에 점 보러 갔을 때 혹시나 걱정되어서 그 할머니 사주도 같이 봤는데 얼마 못 갈 거라고 떡하니 다부지게 말하지 뭐예요? 명줄이란 게 참…… 혹시 그 할머니가 직전에 손녀 따라 교회에 가시고 나서, 부정탄 게 아닐까요? 아 왜, 그 있잖아요. 효력이 떨어지는 걸 수도……”

아까 10번 칸에 계셨던 아주머니 분들은 연신 점과 운명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시면서, 동시에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셨다. 참으로 대비되게, 9번 칸에 있었던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그 어떤 대화를 나눌 상대도 있지 않았다. 듣거나 삼키거나, 내게 허락된 그 시각의 행동은 그것뿐이었다.

“어제저녁에 눈 감으셨다고 했지요?”

“예, 8시 20분 정도였을 거예요.”

“일 끝나고 바로 갔는데도 늦어서, 그때 같이 못 있어드린 게 너무 아쉽네……”

현생의 마지막을 함께 하지 못한다는 것은 남겨진 자들에겐 매우 슬프고 안타까운 일인가 보다. 그렇다면, 영정사진과 상주도 없는 무연사(무연고 사망자)의 영혼들에겐 끝까지 더더욱 가슴 아픈 지상 위 상처가 아닐까.

“글쎄, 아무리 삼재를 막으려 도병(刀兵), 기근(饑饉), 질역(疾疫)에 있어 절 올리면 무얼 하냐 이거예요. 운명이 결정을 이렇게 떠억 하니 말뚝 박으면, 그걸로 그만인 것을……”

“그것도 점쟁이가 밤 8시에서 10시 사이를 특히 조심하라고 이른 게, 생각해보면 용하긴 용한 것 같은데……”

결정론, 만사에 있어서 결정된 것이 있다고 믿는 사상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일까. 더 나아가서는 믿음직한 사상인 것일까. 이를 처음 명시한 데모크리토스, 혹은 기독교서 모든 것을 아는 존재인 야훼(정확히는 예정설), 아니면 그 반대로 전통적인 의미 서 비결정론의 위치에 서있는 양자역학 중에서 과연 무엇이 맞고 무엇이 틀린 것일까. 각기 다른 삶을 살던 이들이 저녁 8시 20분 경이라는 한날 비슷한 시각을 기점으로 운명(殞命) 했고, 이를 운명(運命)이라 볼 수 있는 것일까. 

그 답은 망자에게 물어봐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하늘에게 물어야 하는지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혹은 지상 위 종교도 망자도 아닌, 더 위에 있는 하늘을 따르는 점성술에게라도 질문을 던져야 하는 걸까. 천체 현상을 관측하여 인간의 운명과 장래를 예측하는 그 점성술 말이다. 이 땅 위에서 일어나는 삼라만상을 헤아릴 수 없다면, 그렇게라도 탐구의 문가에 귀를 대어보아야 할까. 그러다 문득 예전에 우연히 읽었던 과학 저널 <네이처>의 한 부분이 떠올랐다. 

‘점성술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발달하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우리 주변에 있는 육십갑자나 황도 12궁 등이 아직도 남아있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의외로 서구권에서 이를 일종의 진리처럼 믿는 사람들이 많은데, 본 저널에서 이를 과학적/통계적으로 연구해보았다.

……

연구 결과, 점성술사가 운명이나 심리를 정확하게 맞출 확률은 3분의 1밖에 되지 않았고, 점성술 자체는 겨우 10% 밖에 맞추지 못하였다.’

만사와 운명에 있어서, 3분의 1은 어떤 수치일까. 종교, 점 혹은 여타 다른 분야와 견줄 때, 일종의 비련함이 깃든 인간의 운명이란 것을 과연 조금이라도 헤아릴 수 있는 하나의 지표이자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을까. 2019년 12월 31일 오후 2시, 이 모든 것 앞에서 인간은 너무 작고, 한없이 가련한 존재라는 생각과 함께, 나는 다시 현세가 널리 깔려있는 강남으로 향했다. 아주 잠깐의 연고를 뒤로하고.

‘전 점성술을 믿지 않아요. 제가 궁수자리인데, 우린 의심이 많거든요. - 아서 C. 클라크’




[뮤즈: 권호 작가]


<시계와 시간>

바람 없는 겨울, 
핸드폰으로 날짜를 본다.
어느새 숫자가 달라졌다.
나를 기다리지 않고 

살아가는 너.

바람 부는 봄, 
오토매틱 시계를 찬다.
늘 그렇듯, 멈추어 있다.
나를 기다리며.

죽어있는 너.

2020년 새해, 
시계(詩契)의 때가 되고
다시 시계를 찬다.
손을 움직여 글을 쓴다.
그렇게 시간을 움직인다.




[뮤즈: 휘게 작가]


<2020>


이 정도일 줄이야.

공 감하지 못했었는데

이 제는

공 감하네 내 나이.



<무제>


산 정상에서 불안이 굴러떨어진다.

온갖 걱정으로 덮여 있는 산을 불안이 굴러떨어진다. 

지금은 일어나지 않은 온갖 걱정들이지만 자칫 잘못된 선택 한 번으로 불안의 덩어리가 내 집 뒷마당을 덮치리다.




[뮤즈: FYDFYD 작가]


<복숭아>

어느 날 고스란히 마음에 들어온 복숭아 하나
예쁜 자태가 상하면 안 된다는 듯
이파리 두 장이 꼬옥 안고 있었어요

참 신기하죠
이 복숭아는 찬란하게 빛나요
어떤 빛깔이던 찬란하게 빛나요

맛은 먹어보기 전까지는 절대 알 수 없어요
어느 부분은 쓰라리게 쓴 부분이 있는가 반면
또 어느 부분은 세상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하는 달콤함이 있지요

먹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베어 물 수도 없어요
이파리가 복숭아를 보여주면
그때야 한입 베어먹을 수 있거든요

어제는 이파리가 걷혀있어서 한입 베어 물었어요
시리도록 시큼하고 목이 메었어요
너무 시려서, 너무 아파서 몰래 덮어버릴까 생각했어요

그런데요, 시리고 아프다고 덮어버리기에는
너무나도 어렵고 예쁘게 제게 온 복숭아예요

어제는 너무 시었지만
내일은 또 다디단 복숭아일 수 있으니까요
어떤 맛이던, 복숭아는 고스란히 마음에 들어왔어요

제가 꼭 끌어안기로 결정했어요
누구의 말도 아닌 오로지 제 마음이예요
끝없이 찬란하게 빛나는 복숭아 말이에요.




[뮤즈: 장윤재 작가]


언젠가 내 가슴속에서 타오르던 그것은

이제 재가 되어 발치에 쌓여 걸음을 무겁게 한다.


반짝임은 유한함을 의미하기에

타오르는 불빛이 덧없어 나는 울었다.


가장 빛나는 도시는

가장 많은 것들의 무덤이더라.




[뮤즈: 김다빈 작가]


<2020>

20대의 건강한 치아
80대도 건강한 치아
라는 광고가 있는데
내 20대의 치아는
20개가 온전히 있느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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