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즈 모임] '화분'에 대한 두 번째 이야기

소재는 화분

권호 기자

작성 2020.02.01 21:47 수정 2020.02.20 21:27
<출처: unsplash>





[뮤즈: 권호 작가]


<잭과 콩나무>

마음이 울적해
화분을 만들어
콩나무 심었네

무럭무럭 자라
하늘까지 닿아
타고 올라갔지

이상한 나라에
거인과 보물이
나를 기다리네

생각에 잠긴다
보물을 훔칠까
그와 싸워볼까

고민하다 그냥
조용히 내려와
일기를 적는다

오늘은 여기까지.




[뮤즈: estela 작가]


<불면증>

심한 열병을 앓았습니다.
가슴은 뜨겁고 호흡을 가삐 하며 나의 눈은 무겁게 감기었습니다.

이불 아래 나, 나 아래 침대

이렇게 셋은 하나인 양 매일 온밤을 뒤척였지요.

작은 불씨였던 열은 사소한 낙엽 따위에도 성을 내며 큰 불로 번집디다.
불길은 아무 수고 없이 자연히 긴 밤을 가로지르더이다.

마음이 아프다.
이 한 문장을 구구절절 무서운 말들로 가득 채운 의사의 처방전을 보았습니다.

Zolpidem, xanax, parox, diazepam...

나는 고분고분한 환자였기에 의사의 처방대로 시간을 맞추어 약을 삼켰습니다.

자리에 누우면 약은 나의 뇌를 죽입니다.
불이 번질 사이도 주지 않습니다.

땔감이 될 낙엽들은 쌓이고 나무가 되었습니다. 나무는 숲이 되었습니다.
낙엽에서 발아된 나무들은 열매조차도 낙엽입디다.

낮이 되면 약은 말을 듣지 않아요.
아마도 약은 흡혈귀일지도 모릅니다. 해를 싫어해서 밤이 되길 기다렸다가 나의 뇌를 흡혈해 서서히 죽이려는지도 모릅니다.

낮은, 숲이 타오르는 시간이 됩니다.
내가 거닐 길 없이 사방이 발광합니다.

낙엽은 또 다른 나무가 되어 금시에 낙엽을 흩뿌립니다.
헤아릴 길 없는 숲은 제 몸을 불태우며 땅에 남겨진 낙엽, 제 어미들을 재로 만듭니다.

나는 별 수 없어 온몸으로 낙엽을 맞습니다. 달갑지 않은 손님을 맞이하듯 억지로 억지로 삼켜봅니다.

숲이 타올라, 해도 달도 뵈질 않습니다.
아마도 건너편 금성은 이 불빛을 반사해 또 다른 행성에서 달처럼 반짝이겠지요.

Take drug.

의사는 얼음같이 말했습니다. 내 목구멍에 약을 한 뭉치 집어넣습니다.
불길은 멈췄고 나무는 계속 퍼져나갑니다.
낙엽이, 낙엽의 줄기가, 나무가, 뿌리가 머리뼈를 부수고 뚫고 터져 나옵니다.
뇌수가 분수처럼 사방에 쏟아집니다.



<질투는 나의 힘>


너는 오만하다.
네가 지은 성이 세상인 양 지껄이는 너는, 재수 없다, 거만하고 무지하다.

너는 이기적이다.
너의 전 애인들의 이야기를 서슴지 않는 너는, 정말이지 못됐다. 얄밉다.

내가 어쩌다 너를 사랑하게 됐는지는 나조차도 알 수 없다.

나는 너의 오만함을 숭배한다. 네가 세운 얄팍한 성에서 이상한 경외감을 느낀다. 
그 성 안에서 너와 나 단 둘이 우주가 꺼질 때까지 숨고 싶다. 

너의 못됨과 얄미움마저 나에겐, 그런 너를 사랑할 힘이 된다.

질투는 나의 힘.

너는 솔직하고 배려하지 않는다.
전 애인들의 취미와 습관들을 나에게 강요한다.

나는 너의 배려 없음마저 사랑하게 되었으므로 그녀들의 모양을 따라 하려 한다.

전 애인들과 함께했던 사진들을 멀뚱히 전시하는 너의 잔인함이 이제 나에겐 진보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나는 아프게 너를 사랑한다.
너의 뾰족함들을 모조리 품어 내 등이 뚫리고도 뚫린 등이 허전할까 너를 사랑하기를 멈출 수가 없다.




[뮤즈: 휘게 작가]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

길가에 버려져 있는 화분을 주웠다.

내 기억 깊은 곳에 잊히고 있던 그 화분을 주웠다.

"그냥 버릴까..." 한번 키워보자.

설사 꽃 피우지 못할지라도.




[뮤즈: 심규락 작가]


<화수반: 화분의 받침 그릇> 

이 세상의 언어는 
더 중요한 말의 씨를 맨 앞에 두어 심는다던데
그럼 그대는 인간보다는 식물에 더 가까워지는군요

그렇지만, 비록 식물인간이라 하지만
이 입술은 나의 당신을 차라리 꽃이라 읊고 말래요

그럼 이 어두운 병실 속
더 어두커니 뉘인 침대는
차라리 아침을 향해있는 화분이 될 터이니

화분(花粉) 같이 노다니는 심장도
수술같이 그 빛나는 머릿결도
호흡의 지하층에서 벗어나지 못하였지만

나는요, 나는 말이에요
당신의 의식이 그저 편히 가로 뉘었다 여길래요
이 수직의 숲이 가로채간
햇빛을 받아내기 위해, 더 오롯이

약혼이 새겨진 그 손가락을 물고 있는 빨랫 집게가
이제는 내 앞의 꽃을 쥐어짜내기까지 한 것 같아
피치 못해 울어 드리고 있습니다
그대가 미처 알아채지 못할 이 시간 자락의 한 틈 동안만

살아는 있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요
우는 표정이 피지 않으니 더욱이 가꿔드려야 할지요

중요한 건 의식의 부재가 아니라
두 마음이 함께 살아있다는 것이기에

붉은 토양이 든 하늘 아래서
겸연쩍은 미소가 모종삽이 되어 
이윽고 원예가 이뤄집니다

그쪽 세상의 몸짓은 
편안할수록 가만히 있다 하던데
그럼 당신은 포기보다는 반겨줌을 행하는 것이겠지요

나를 안아주려고 아직까지도 어디 가지 않은 거라고
그래서 대뇌가 아닌 두 팔에 마음을 더 얹는 것이라

그렇기에 당신의 화분을 애써 꾸며봅니다
사진 한 톨, 기억 한 줌을 그 밑에서 굳이 긁어모아
홀연히 어디에 털어내 버림 없이
그저 이 가슴에 적재할 뿐이지만

대신 눈물꽃의 낙화는 아니 되어요
나의 당신 혹은 나의 자신 
어느 한쪽도 슬퍼한다는 것은 말이에요

다른 누군가로의 대체 혹은 이 병실의 분갈이는
우리 둘의 증발을 뜻하기에
그래서 모아야 해요
과거가 모여 흐르는 이 현재의 수분까지도 말이에요

내 맹세가 그 반지처럼 원반이 될래요
부동 상태의 지금 마저도 다 알았다는 듯이 감싸주는 
그 담요보다 더 큰 원반 말이에요

그래서 눈물이 넘쳐 우릴 적시지 않게
그렇게, 화수반이 될래요

오늘도 그 화분 밑 간이침대에서
같은 꿈의 정원을 함께 가꿔봅시다

당신이 눈을 뜨고 내가 감아도 
서로를 마주 볼 수 있는

그곳서도 곧 보아요




RSS피드 기사제공처 : 뮤즈 / 등록기자: 권호 무단 전재 및 재배포금지

해당기사의 문의는 기사제공처에게 문의